오를레앙 시장의 부인은 자신의 유언장에 기록하기를 자신을 화려한 예식 없이 묻어달라고 했다(1534년). 사람이 죽었을 때 프랑스의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자면, 죽음을 알리려 외치는 고용인들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려고 종을 울리며 사거리로 나가고, 고인의 이름과 직위와 직함을 열거했다. 그리고 고인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권고하고, 장례식 시간과 장소를 얘기해준다. 고인을 땅에 묻으려 관을 들어올릴 때, 그곳에는 시주 수도사(꼬르들리에)들이 일반적으로는 초청받았고 횃불들과 촛대들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부인은 그런 요란한 선전을 전혀 원하지 않았고, 그의 남편은 그의 소원을 따라주었다. 오를레앙 시장은 단지 시신을 묻어야 하는 가톨릭 성당에 소속된 꼬르들리에들(프란치스코 교파 수도사들)한테 6에퀴(2100유로 정도)를 주었다. 이 돈은 그들이 기대하던 바와 달리 적은 액수여서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일을 복수하기 위해 이 죽은 여자(오를레앙 시장의 부인)가 영원히 저주받았다고 하며 동네방네 거짓말을 퍼뜨리고 다녔다. 그들은 자주 나쁜 일들을 꾸미고 다녔는데, 그게 어떤 식이었느냐 하면, 어느날엔가 그들은 어느 젊은 수련수도사를 (사람들 몰래) 교회 천장에 숨겼다. 그들이 아침, 자정을 말할 때마다 이 젊은 수련수도사는 교회의 종을 쳤다. 그때마다 다른 수도사들은 이것이 « 악령 »에 대한 것이라 말하며 마귀를 쫓아내는 작업을 했다. 그럴 때마다 젊은 수도사는 더욱 소란을 피웠고, 소리까지 질러댔다.

꼬르들리에들은 아침마다 몇 몇 마을 사람들을 수도원에 오게 했고, 그때마다 소음은 일어났다. 그리고 수도사들은 (왜 그런지를 알고자) 신에게 물었고, 이것은 저주받은 시장 부인의 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여인의) 무덤을 다시 파서 거룩한 땅에 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를레앙 시장은 이것은 그들이 꾸민 거짓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는 프랑수아 1세 왕에게 탄원서를 넣었다. 빠리에서 재판이 열렸고, 젊은 수련수도사는 모든 것을 자백했다. 꼬르들리에들은 투옥되고 오를레앙에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형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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