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다
312년, 토리노 근처 밀비우스 다리 위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기 전에, 로마 교황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세상은 달라졌다. 초기 기독교의 증인이었던 세자레의 유세비우스(에우세비우스)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해가 중천에 뜰 시기로 갈 무렵, 쇠퇴기로 접어들 시기에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태양 저 너머의 공중에서 빛을 내던 십자가 모양의 트로피에 적혀 있는 것을. “이것으로 승리하라.”[1]> 그…
오를레앙 시장의 부인은 자신의 유언장에 기록하기를 자신을 화려한 예식 없이 묻어달라고 했다(1534년). 사람이 죽었을 때 프랑스의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자면, 죽음을 알리려 외치는 고용인들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려고 종을 울리며 사거리로 나가고, 고인의 이름과 직위와 직함을 열거했다. 그리고 고인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권고하고, 장례식 시간과 장소를 얘기해준다. 고인을 땅에 묻으려 관을 들어올릴 때, 그곳에는 시주 수도사(꼬르들리에)들이 일반적으로는 초청받았고…
7. 개신교와 그의 역할 지금까지 짧은 묘사에 불과히자만, 1500년도에 가톨릭 교회에 일어난 일들이고, 가톨릭 교회가 행했던 일들이다. 이런 와중에도 개혁은 두 가지면에서 완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개혁신교도들은 복음만이 삶에서 유일한 규범으로 인정되는 새로운 교회들을 만들어 나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전세계에서 가톨릭 신도들만큼 개신교인들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 가톨릭 교회 자체도…
6. 가톨릭 내의 자칭 개혁세력 1500년이 되기 얼마 전, 새로운 시도가 일어났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 널리 퍼졌던 네덜란드에 어느 경건한 수도사 잔 스탄돈크가 프랑스에 도착했다. 그는 주교들이 가난한 이들을 둘러보고 돌봐주기를 원했고, 주교들의 삶은 거룩함을 향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내 그는 수고와 노력을 포기하고 만다. 그는 다시 미래를 준비하려고 파리에서 대학병설 <몽떼귀 학교>를 조직했다. 그곳은…
5. 헛된 외침으로 끝난 개혁 1500년대가 되기 몇 세기전부터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해왔다. 예를 들어 성경을 연구했던 알프스의 발도파, 영국의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얀 후스 같은 이들은 개혁이 시작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발도파 신도들은 « 마녀 »처럼 불에 타 죽었고, 얀 후스는 1415년에 콘스탄츠에서 화형을 당했고, 위클리프는 부관참시까지 당하며 뼈까지 불에 탔다. 가톨릭…